기사 메일전송
전직 판사가 재판소원 도입을 주장해온 이유 [세상읽기]
  • 유영찬 기자
  • 등록 2025-12-18 08:51:43

기사수정

전직 판사가 재판소원 도입을 주장해온 이유 [세상읽기]



전직 판사가 재판소원 도입을 주장해온 이유 [세상읽기]원본보기지난 7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연합뉴스
차성안 |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전주지법 군산지원 근무 시절 민사재판의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 나만의 ‘차성안 모델’, ‘군산 모델’을 개발해 3년간(2015~2017년) 시행했다. 그 과정에서 재판 절차상 재판청구권을 침해한 위헌·위법적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 도입도 주장했다. 앞서 2009년 판사 임용 후 4년간은 내 재판이 위헌·위법이라는 생각을 못 했다. 내 재판의 위헌성·위법성을 일깨워준 사람은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다. 2013년 단독판사가 되어 야근·주말근무를 반복하며 수백건의 사건과 씨름하던 중 법관연수를 갔다. ‘헌법소원에서 제외되어 그렇지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헌법재판소 가서 다 깨질 재판’이라는 이용훈 전 대법원장의 일갈을 들었다.

원래 재판부가 한명이라도 바뀌면 변론 갱신을 한다. 소장·준비서면, 증인신문 등 기존 변론의 핵심을 진술하도록 하고 의견을 들어야 하지만 99.9% 안 했다. 10초 정도 ‘변론 갱신하고 이의 없으시죠’라고 이야기한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소위 사법농단 재판의 7개월짜리 변론 갱신은 사법부 역사상 유일한 1건의 예외일 뿐이다. 원고와 피고의 사정을 서면뿐 아니라 ‘말’로도 충분히 듣고 집중 토론을 거치라는 취지로 법률에서 정한 구술 집중심리는 바쁜 판사의 “써 내시면 읽어볼게요”라는 말로 대체된다. 한 기일에 수십건(소액재판은 100여건!)을 진행하는데 평균 5~7분의 변론시간 동안 서류·증거 체크하고 몇마디 주고받으면 끝이다. 다투는 사건은 1~2회로 끝낼 수 없어 다수의 변론기일을 1~2개월 단위로 반복한다. 3인 합의부인데 재판장·주심판사 2인만 모여 합의를 했다. 비주심판사는 판결문 서명 버튼만 누른다. 당연히 위헌·위법의 재판이고 상소·재심의 이유이다. 3인 합의 관행이 일부 만들어지고 있지만 그 실질도 합헌·합법인지는 의문이다. 헌법상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보장되지만 재판기간 제한 규정을 위반한 지연된 재판이 속출한다. 위반은 명백하나 훈시규정이라는 판례법리로 인하여 상소나 국가배상 청구는 불가능하다.

선진국보다 판사 1인당 2~4배 많은 사건을 처리하는 고효율(?)의 값싼 ‘가성비 재판’을 추구한 부작용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3천명의 판사를 3~4배(1만명)로 늘려야 한다. 법관 증원 풀을 늘리려면 로스쿨 정원 철폐, 변호사시험 합격자 3~4배 증가(연간 5천명)와 변시의 자격시험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익집단화한 변호사단체와 사법시험의 향수에 기대는 개천 출신 용으로 가득한 정치권의 저항을 넘기 어렵다. 재판소원은 이 상황을 바꿀 수 있다.

판사 사직 뒤 잊고 있던 재판소원의 필요성을 느낄 일이 생겼다. 지난 11월 장애인 저상버스 소송이 11년째 지연된 상황에서 나온 고등법원의 파기환송심 판결이다. 이 판결은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적극적 구제 조치로 버스에 휠체어리프트 장착 등을 명하면서도 판사 재량으로 그 범위를 노선 몇개로 확 줄여버렸다. 11년간 ‘미뤄 조지는’ 재판의 전형을 보여주며 저상버스 도입에 오히려 해를 끼치더니, 장애인의 절규로 도입된 장애 차별 해소를 위한 적극적 구제 조치까지 크게 약화시켰다. 장애인 차별이 명백하고 그 차별 시정을 위한 적극적 구제 조치에 드는 비용이 ‘과도한 부담’이 아니어도, 판사가 기업들 부담이 심해 보이면 재량껏 적극적 구제 조치를 확 줄여 내릴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를 통한 법리도 나왔다. 기준은 판사 마음인데, 휠체어 타는 장애인은 부모님이 계신 부산 시외버스 노선에는 휠체어리프트 설치를 요구할 수 있지만 여름휴가지 시외버스 노선에는 요구할 수 없다는 식이다. 장애인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한 판결로서 재판소원 도입 시 1호로 깨야 할 판결이다. 2호 후보도 있다. 임금청구 소송 중 생계가 위협받으면 임시로 사용자를 상대로 임금 지급 가처분 등이 가능한데, 국가를 상대로 한 행정처분 취소 소송에서는 이런 식의 적극적 가처분은 안 된다는 대법원 판결이다. 이 때문에 사회보장법상 생계급여를 거부당해 제기한 거부처분 취소 소송이 길어져 원고가 굶어 죽어갈 일이 생겨도 임시 생계급여 가처분이 불가능해졌다. 헌법재판소는 가난한 수급자의 재판청구권을 침해하는 위 대법원 판결을 깨야 한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도 유사한 사건에서 법원 판결을 취소하였다. 충실하고 합헌·합법적인 재판, 차별받거나 없는 자에게도 평등하고 신속한 재판의 실현을 위해 재판청구권 침해를 이유로 한 재판소원이 필요하다.


출처 - 한겨레신문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최신뉴스더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